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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원한다.
어렸을 때 할머니 한테서 흔히 듣던 말중에
"이제 죽어야지 더 살아서 뭐해"하시던 말이 있다.
어리석었던 나는 늙으면 죽고 싶은가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거짓말이란 사실을 늣게서야 알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인구가 9770명이란다.
2005년 961명에서 5년 만에 무려 10배 이상 늘었단다.
'고령사회'의 시작이라고 할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100세 시대'의 개막이 더 듣기 좋은것 같다.
국민 모두가 오래 산다는데 더 이상 좋은 일이 어디있겠는가 만은
설문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다.
한국외국어대 박명호 교수팀이 전국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0.1%가 100세 시대를 축복이 아닌 재앙으로 인식하고 있단다.
젊은이들이 늙은이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재앙으로 받아드리는 모양이다.
한 사람의 늙은이로서 돌이켜 보면 억울한 생각도 든다.
참으로 열심히 일 했는데,
무에서 유를 창출하느라고 열심히 일 했는데,
부모 공경하고 자식 교육시키느라고 열심히 일 했는데 .....
결과적으로 잘 살게 돼서 수명도 연장되니
좋은 현상인가 보다 했더니 재앙이라니!
현재 젊은이들이 앞으로 늙으면 그때는 재재앙이란 말인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 3세기를 거처 살아 온 사람, 월터 브루닝(Walter Breuning
1896.9.21-2011.4.14)씨가 지난달 4월 14일 향년 114세로 자연사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의 비결은 무었일까?
그가 타계하기 6개월전에 가졌던 TV인터뷰를 간추려 보자.
첫째
모든것을 개혁하라.
무엇이든지 새로 바꾸면 더 좋아 진다.
두번째
하루에 두끼만 먹어라. 두끼면 충분하다.(소식하라)
세번째
계속해서 일하라.(돈은 유용하다)
네번째
남을 도와줘라.
(남을 도와주면 도와줄수록 자신은 보기 좋게 변해 간다)
마지막으로 가장 힘든 문제인데
"죽엄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 드려라"
브루닝씨가 10대였던 1900년대 초에는
전기도 수도물도 없는 암울한 시대였었다.
우물 물을 길어다 사용했고,
석탄을 난로에 피워 집을 덮였다.
이동수단으로는 기차냐, 말이냐, 걷는거냐의 택일 뿐이었다.
1912년 그의 부모가 미네소타로 이사했고,
당시 16세였던 소년 브루닝은 철도회사에서 회계사를 돕는 일로
사회에 첫발을 내 디뎠다.
첫번째 직장 철도회사에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주일에 7일씩 50년을 근속했다.
22살이 되던 해,
1918년 사장이 그레이트 폴스(Great Falls) 몬타나로 전근 가면서
성실한 청년 브루닝도 같이 가게 되었다.
그레이트 폴스는 하루에 이동인구가 25000명이나 되는
번잡한 기차역이었다.
1922년 처음으로 라디오방송이 시작되었고,
중계방송을 통해서 헤비웨이트 복싱 참피온쉽 경기를 청취 할수 있었다.
철도역 전보원으로 근무하던 두살 아래 여자 아그네스를 만나
사랑에 빠저 결혼한 것도 그 해였다.
시내 중심가도 모두 비포장도로였고 마차가 다니던 시절이었다.
포드 중고차를 150불에 샀고,
차를 몰고 달리면 말이 놀라서 비켜나곤 했었다.
15불 주고 땅도 사서 집도 지었다.
1930년대 대공황에 접어들면서 해고사태가 벌어젔고
브루닝씨도 모든 재산을 잃었다.
다행히도 브루닝씨는 근무연력이 많아서 작은 도시 부트로 옮겨가
직장만은 유지할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대도시 그레이트 폴스로 이사했다.
브루닝씨는 장수와 집안내력은 별개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50세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46세에 별세하셨다.
1957년 아내 아그네스(59)는 35년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자녀도 하나 없이 죽고 말았다.
그후 브루닝씨는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아내가 죽은지 5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봐도
우리들의 결혼생활은 행복했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내는 돈 쓰기를 무척 싫어헀던 여자였었다.
그동안 재혼도 생각해 봤었지만 생각만으로 끝냈다.
그리고 일에 몰두했다.
브루닝씨 인생에서 일을 빼 놓으면 아무것도 남는게 없다.
67세의 브루닝씨는 철도회사에서 더 이상 일할수 없는 나이가 돼서
50년간 근속했던 직장에서 은퇴했다.
은퇴후에 지역 봉사단체에서 비서로,
지배인으로 그의 나이 99세까지 다시 32년간 일했다.
브루닝씨는 컴퓨터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컴퓨터 예찬론자이다.
"지난 100년동안 새 발명품이 등장 할때마다 세상은 바뀌었다.
세상이 바뀔때마다 살기도 좋아젔다."
"우리는 펜에다 잉크 찍어 글을 썻었는데
지금은 컴퓨터가 다 해주니 얼마나 편한 세상이냐."
브루닝씨는 노인들이 사는 좁은 스튜디오 아파트(오피스텔)에서
1980년부터 살고 있다.
작년 10월 매스컴을 통해서 브루닝씨가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파트 감독관이 지금보다 넓은 유니트로 옮겨 갈것을 제의했으나
브루닝씨는 사양했다.
아파트 감독관의 말에 의하면 브루닝씨는 아침과 점심만 먹고
오후에는 일찌감치 자리에 눕는다고 한다.
주치의 방문도 일년에 두번 건강검진만 할 뿐이고
먹는 약은 아스피린 밖에 없다고 한다.
브루닝씨의 건강은 하루에 두끼만 먹는
다이어트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브루닝씨로부터 교훈을 찾아보자.
젊은이들이 '100세 시대'의 개막이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 원인중에 하나는 '100세 시대' 세대들이
젊은이들에게 부담이 될것이다라는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브루닝씨는 우리와 마찮가지로 힘들고 가난한 시절을 살아 왔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재산도 없다.
자녀도 없고 연금도 없다.
사회보장제도가 76년전,
그의 나이 41세부터 시작했으니 기본급이나 받을 것이다.
정부에서 제공해 주는 노인 아파트에서 생활한 것을 보아도
여유있는 생활이 아니였음을 알수있다.
브루닝씨처럼 최소한의 주거환경과 생활경비는 젊은이들의 부담을 덜어 준다.
브루닝씨는 개인 노력을 통해서 99살까지 일을 계속하면서
적극적인 삶을 유지했다.
평생동안 자기관리가 철저해서 술과 담배는 피하고
시간관념과 소식을 지켰다.
건강한 삶은 의료비도 적게들어 젊은이들의 부담을 덜어 준다.
브르닝씨는 욕심없는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았다고 보여진다.
허영과 사치 또는 분에 넘치는 요구도 없었다.
특별한 시간봉사가 필요 없으니 젊은이들의 부담이 덜하다.
100세를 살더라도 브루닝씨처럼 산다면
젊은이들이 크게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100세 시대'의 개막이 재앙이라고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100세 시대' 세대들은 또 다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