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한진중공업 김상욱 노조위원장은 선주(船主)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제발 우리 회사에 선박을 발주해 달라"고 읍소했다.
당시 한진중공업은 2011년 부산 영도조선소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희망버스' 시위에 이어
2013년 1월 노조원 자살에 이은 금속노조의 '시신(屍身) 투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노사 분규가 장기화되면서 어렵게 잡은 수주 기회도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새로 들어선 한진중공업 노조 집행부는 선주사에 납기 준수와 품질 보증을 약속하며
수주 활동 지원에 나섰다.
급기야 영도조선소는 2013년 7월 5년 만에 신규 건조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엄청난 갈등 끝에 회사가 살아야 직원도 살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다른 조선업체도 노사가 수주를 위해
공동 보조를 맞추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이 돌변했다.
조선업계 전체적으로 수주 가뭄과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와중에 대다수 조선업체에서
노사 갈등까지 터진 것이다.
외환(外患)에다 내우(內憂)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특히 세계 1위 조선 기업인 현대중공업은 요즘 바람 잘 날이 없다.
이달 들어 회사 측이 설계 인력 충원을 위해 일부 여사원을 대상으로
컴퓨터 설계 교육을 실시하자 노조가 "교육을 강행하면 파업을 불사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사무직 직원과 장기 근속 여사원을 명예퇴직으로 내보낸 데 이어 생산직도 감원하려는 수순이라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도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조원이 넘는 영업 적자를 냈는데
노조가 올해 기본급을 7% 가까이 올려달라는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어렵게 차기 사장 후보를 확정한 대우조선해양도
'24년 무분규 전통'이 깨지기 일보 직전이다.
노조는 '신임 사장이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파업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성동조선·SPP조선 같은 중견 조선업체도 거듭되는 감원설이나 합병설로
노사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더욱이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8개 조선업체 노조는 '구조조정 중단'
'고용 안정 보장'을 요구하며 올해 처음으로 연대 투쟁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한국 조선업계는 노조가 강경 투쟁 일변도 노선에서 벗어난 1990년대 중반부터
급성장해 일본을 제치고 사상 처음 세계 1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중국의 추격과 일본의 부활로 10년 이상 지켜온 세계 1위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인 수주 가뭄으로 적어도 내년까지는 실적 회복이 난망(難望)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가 머리와 가슴을 맞대고 해법을 찾아도 모자랄 판에
적전(敵前) 분열을 거듭하는 양상이다.
한국 조선업계가 조만간 좌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기자만의 기우(杞憂)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