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 on LIFE; 왕관 버리고 사랑 택하다
사냥과 우표수집 외에 한 일 없다는 영국 왕 조지 5세. 결혼
생활만큼은 모범생이었다. 뒤이을 장남은 영 딴판. 플레이보
이였다. 반듯한 아버지에게 그런 아들은 늘 걱정거리였다.
그 장남의 애인이 해외여행을 떠나게 됐다. 외로움 달래라며
친구 소개해 주고 갔다. 미국인 이혼녀. 아름답다 할 외모가
아니었다. 얼굴이 길었고 턱이 넓었다. 그러나 재치가 넘쳤다.
품위가 있었다.
왕위계승권자와 이혼녀의 첫 만남. 남성은 직감했다. 그녀와
함께 산다면 나는 이 세상에 더 유용한 사람이 될 거라고. 여
성도 새롭고 빛나는 세상 열어주는 문이라고 느꼈다.
비밀스러운 사랑이 시작됐다. 고민 털어 놓으려 했을 때 부친
급서. 1936년 1월 20일 그는 즉위했다. 영국 왕 에드워드 8세
다. 당초에는 왕관과 결혼 둘 다 갖기를 시도했다.
귀천상혼(貴賤相婚)도 제시했다. 평민과 결혼하여 왕위는 유
지한다. 다만 부인과 자손은 지위를 상속하지 않는 방법이었
다. 어떻게든 왕도 되고 결혼도 하려 했다. 왕실과 의회와 교
회는 여전히 반대.
특히 국민이 실망했다. 두 번이나 이혼한 여자가 왕비가 되다
니. 언론도 인내심에 바닥이 나자 비난에 가세했다. 사면초가.
그는 결심했다. 1936년 12월 10일. 오늘이다. 의회에 서한을
보냈다.
이날 영국하원은 전 의원이 출석했다. 방청석도 만원. 볼드윈
수상이 왕의 문서를 의장에게 건넸다. 낭독했다. 왕위를 동생
에게 양위하고 퇴위한다. 이 말이 길게 의사당을 울렸다.
이튿날 밤 10시. BBC 사장이 연사를 소개했다. 이제는 국왕
에드워드 8세가 아니다. 윈저 공이다. 월리스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려고 왕위를 아우에게 이양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드워드가 말했다.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
는 국왕의 책임과 의무를 견디지 못함을 깨달았다. 짐을 내려
놓기로 했다. 영국국민은 라디오를 통하여 이 세기의 사랑을
공식확인했다.
두 연인은 이듬해 프랑스에서 결혼했다. 사랑의 망명자. 조국
을 등진 채 돌아다녔다. 처칠은 이 사랑을 처음부터 이해했
다. 일하고 싶다는 그에게 바하마 총독자리도 제공했다. 그러
나 왕실과 국민은 외면했다.
왕위를 이어 받은 아우. 태어나면서부터 말 더듬어 아예 왕
되리라는 생각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피나는 훈련으로 어느
정도 고쳤을 때 형이 쓰려던 왕관이 그에게 돌아왔다. 조지 6
세다.
부인의 내조가 말더듬이 고치게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을 영
국인이 견뎌낸 데에는 그런 조지 6세의 라디오 방송이 주효
했다. 크리스마스 축하연설을 들으며 영국인은 국왕의 사랑
느끼곤 했다. 용기도 얻었다. 사랑이란 바로 그런 거 아닌가.
이 왕의 딸이 현재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윈저 공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친구에게
말했다. 편안했다고. 제일 큰 걸 버리자 일거리가 없었다. 매
일 가고 싶었던 고향땅 영국에 돌아가 살지 못했다. 그러나
편안했다고.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따뜻하고 편안해지는가. 세상살
이 어려울 땐 더 그렇다. 사랑이 먹여 살려 주느냐고 하는 사
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랑 없으면 어떻게 이 세파 견디
나. 사랑은 安心基地(안심기지)다.(김중겸의 안심세상 웰빙치안2010년12월 09일(목)충청타임즈 webmaster@cc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