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작품 평가위원, 심사위원

백미나의 춤의 정취

이경화 2012. 9. 16. 14:33

 

 

 

 

 

 

 

 

 

 

 

 

 

인터뷰
스포트라이트
백미나 - 무용연구가
“다시 태어나도 춤만 출 것” 이라는 춤꾼
기사입력: 2010/11/29 [16:07] ㅣ 최종편집: ⓒ 울산여성뉴스
원덕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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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여성신문

 
 
15년 전 타악으로 시작한 예술에의 길이 6년전 무용으로 방향을 바꾼 이후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매일이 새롭다는 백미나 무용가.

그녀는 이미 북, 장구, 괭과리 등 쳐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는 대부분 섭력이 됐고 ‘백미나 사물단’으로 울산국악계에 자리매김했다.

“춤, 소리 보다 타악을 먼저 했기 때문에 예술세계가 더욱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국악은 한 분야를 해가지만 모든 예술이 그렇듯 서로 유기적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춤을 추기 위해서는 박자를 위한 소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음악과 타악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여름 작괘천계곡 물위에 마련된 물마루에서 ‘백미나의 춤의 정취’ 란 제목으로 한바탕 춤판을 벌인 백미나 무용가를 만나보았다.
 
 
그 날 공연의 감명이 되살아나는데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었는지...

“공연의 주제가 ‘춤사위는 물마루에 몸을 풀고’ 였습니다. 제가 타악기의 소리에 미쳐 ‘백미나사물놀이단’을 구성해 활동하고 있을 때 공연섭외가 들어오면 단원들과 맞추어야 하는데 다함께 연습해야 하는 과정도 어려웠고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다 표현하지 못했을 때 제 스스로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혼자서 할 수 있는, 혼자 생각하는 바를 다 표현할 것을 찾으며 고민하던 중에 주위에서 춤사위가 좋으니 춤을 추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습니다.

춤은 종합예술이었습니다. 음악과 소리와 의상과 연출 등...참 매력적이죠. 그래서 어느 정도 타악기를 다룰 수 있게 됐을 때 춤으로 전환했고, 한 번 시작하면 완전 끝장을 보는 성격 탓으로 발목이 휠 정도로 춤을 추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교방입춤, 지전춤, 승무였는데 이 춤들을 좀 더 이색적으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작괘천 물위에서 가진 공연이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랬다. 한 가지의 춤을 섭렵하기도 어려운데 몇 년 사이 그는 어렵다는 세 가지의 춤을 배우고 익혀 물위 공연을 펼친 것이었다.
 

‘백미나사물단’의 명성만치나 백미나 무용가의 이름도 만만치가 않은데...

“부끄럽습니다. 사실 말씀드린 대로 제가 어느 일을 시작하면 미칩니다. 그래서 제가 밤낮없이 춤을 추며 남들 30년 역사를 나는 10년에 쓰겠다고 노력을 했고 남들 앞에 선을 보였습니다.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었지만 얼마전 지금의 큰 선생님을 만나고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내년 한 해는 침잠하며 공부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그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교육에는 더욱 열성적으로 임하고 싶단다. 이미 그의 제자는 4세에서부터 86세 초고령 제자까지 다양하다.

가르치는 일은 재미있고 가장 자신있는 일이란다. 스스로 독학으로 갈고 닦은 바탕위에 쌓아올린 연마여서 가르치는 일 하나만은 자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내는 사람치고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그의 열정은 스스로 평하듯 ‘시련위에 피는 꽃’이라는 말이 그대로다.

사실 그는 지금까지도 시간이 아까워 동네 목욕탕도 잘 안가며 연습에 몰두하는 노력파다.
“제가 몸이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어요. 타악기에 미쳐 십 수년을 북과 장구, 괭과리를 쳤고 연습장소가 없어 산에서 혼자 괭과리를 쳤으니...

요즘도 낮에는 수업을 마치고 밤10시부터 새벽1시까지는 춤을 춰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발목, 무릎관절 손가락, 손목, 귀... 모두 망가졌어요”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 연유와 그 이후 걸어온 길에 대해...

“제가 거창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 후 30대에 늦게 국악을 시작했기 때문에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주위에서 제가 가진 능력보다 높이 평가해 주셔서 항상 더 열심히 더 잘 해야한다는 긴장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좀 천천히 가자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근황과 앞으로 꿈은...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 한국음악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요즘 생활은 춤 공연은 당분간 쉬며 기본에 충실하도록 공부를 더 할 생각이며 미래의 꿈은 더 많이 배워 지도자의 길을 걷고싶습니다.

바램이 있다면 ‘리틀엔젤스’ 같은 멋진 어린이국악단을 만들어 좋은 공연을 하고싶고 어린이국악학교를 만들어 자라나는 아이들이 국악으로 나라를 빛낼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백미나 무용가는 이미 모든 어린이공연의 춤기획을 직접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2세 교육에 열정적이어서 반천 온누리유치원, 태화동시민선교원, 병영꼬마성어린이집, 헤인, 혜원어린이집 등 교육자 지도자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

다시 태어나면 춤만 추겠다고 하는 춤꾼, 고통속에서 꽃을 피워내는 예술가의 길을 묵묵히 가고있는 그는 뒤에서 말없이 힘이 되어주는 남편(정철수 부동산개발업)과 두 딸 연호, 연화 (간호사)와 아들 승필(군인)의 후원을 받으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개척해가는 노력하는 무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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